['국제 원조 선진국'으로] [中] 지원액·국민의식 "아직은…"

  • No : 976
  • 작성자 :
  • 작성일 : 2009-11-09 10:32:36
  • 조회수 : 1881
  • 추천수 : 0

이제 시작, 갈 길이 멀다

국민총소득 대비 지원액 0.09%로 주요국 최하 수준

국민 80% "우리도 어려워" 지원 규모 늘리는 것 반대


올해 6월 9~10일 서울에서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한 고위급 국제회의'가 열렸다. 소말리아 경제 지원, 환경 보호 등도 함께 논의된 이 자리에는 34개 나라와 13개 국제기구 대표가 모였다. 하지만 회의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의장국인 한국이 아닌 일본에 쏠렸다. 우리나라가 "책정된 관련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안을 밝히지 못하고 있을 때 일본은 7000만달러를 선뜻 내놓았기 때문이다. 당시 참석했던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사실상 일본 들러리를 서준 모양새였다"고 했다.



2005년 남아시아 '쓰나미사태' 때 한국이 맨 처음 밝힌 지원 액수는 60만달러였다. "국력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안팎의 비판이 일고 난 뒤 5000만달러까지 늘렸다. 당시 일본은 '5억달러+피해국 부채 지불 유예', 미국은 3억5000만달러, 중국은 '2억달러+스리랑카 부채 탕감', 유럽연합(EU)은 20억달러를 각각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수원국(受援國)→공여국'으로 전환하는 세계 원조사의 신기원을 이룩하며 '원조 선진국 클럽'인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에 이견을 다는 정부 관료나 전문가들은 없다. 이제 막 선진국 클럽에 턱걸이했을 뿐 ODA 규모나 국민 의식 등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국제사회에 지원한 ODA(공적개발원조)는 8억달러로 주요 선진국들 중 최하위권이다. 미국 260억달러, 독일 140억달러, 영국 110억달러, 일본 93억달러 등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70억달러), 스위스(20억달러), 아일랜드(13억달러), 핀란드(11억달러)보다 적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지출비율은 0.09%로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민 1인당 ODA 기여액도 16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DAC 가입국 평균은 134달러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이만큼 올라선 건 평가받아야 하지만 솔직히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G20을 주최하는 나라로서 국제사회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액이 경제 규모에 비해 적은 것은 아직까지 ODA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데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남을 도와주느냐"는 것이다. 한국개발전략연구소(소장 전승훈)가 지난해 외교부 의뢰를 받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72%는 "한국의 대외 원조가 국가 이미지 및 국제 지위 향상 등 국익에 기여한다"며 ODA의 취지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현재 원조 규모를 늘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현 수준 유지'(53%), '줄이거나 중단해야 한다'(28%) 등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다.



그 이유로는 '우리 경제도 어렵기 때문에', '내가 내야 할 세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등이 꼽혔다. "만약 미국 등 6·25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 사람들이 지금 우리 국민과 같은 인식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당시 한국에 군대와 물자를 보낼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을 것"(외교부 당국자)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대외 원조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ODA워치'의 창립 멤버 김혜경 지구촌나눔운동 사무총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받고 준 것만 따져봐도 아직까지 80억달러가량을 국제사회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뿐 아니라 어느 선진국에도 빈곤층 문제는 있지만 선진국은 그 사회시스템 안에서 해결이 가능하고 아프리카 등 절대 빈곤국에서는 그게 안 된다는 차이가 있다. 그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개도국 빈곤이 계속되면 그 불만이 전쟁, 테러 등으로 표출돼 인류 전체의 성장과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는 곧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ODA정책의 또 다른 문제는 명확하게 정의된 원칙·철학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 왔다는 점이다. 대다수 DAC 회원국은 기본법이나 정책선언문으로 대외 원조정책에 대한 목표와 방침을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수년간 'ODA기본법' 채택문제를 놓고 행정부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번번이 무산됐다.



'국제 규범에 따른 조건 없는 기여'를 강조하는 외교 부처와 '우리 경제 발전에 도움되는 방향'에 방점을 찍는 경제 부처의 입장이 충돌하기 일쑤였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 의원들이 각자 발의한 서로 다른 5건의 ODA법안이 계류돼 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는 기여외교를 펼치기 위해 ODA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일선 부처 등에서는 "자원 확보를 위해 (대가 격으로) ODA를 활용하겠다"는 다른 소리가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DAC 실사단이 지난 6월 방한했을 때 핵심적으로 지적한 것도 바로 '원칙' 부분이었다"면서 "ODA 규모 확대와 함께 부처 간 지원의 목표나 지향점을 통일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추천

네티즌 의견 0

스팸방지
0/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