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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경제대통령으로서의 이승만 박사
장소 자유센터 평화대연회장
일시 2008년 9월 24일
인사 손세일(전 국회의원, 현 청계연구소 회장)


"이승만 없는 박정희 대통령은 없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이야기 할 때 흔히 능수능란한 외교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그의 외교력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이루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에 비해 산업화와 근대화의 업적을 세운 대통령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을 내세운다. 때문에 경제대통령이라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 또는 전문경영인 출신인 현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물경제를 다뤄본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외교뿐만 아니라 경제에 있어서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났다.
해방이후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물자는 석탄, 전력, 비료였으며 그 중 비료를 구입해 오는게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증언에 의하면 충주비료공장 건설계약과 관련한 장관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계약조건의 에스컬레이션 조항(escalation clause)을 지적하며 꼼꼼히 계약서를 챙기는 등 해박한 경제지식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경제를 살리지 않고선 정치를 잘 할 수 없다. 당시 이 대통령은 국내 정치인 누구보다 경제관련 리더십이 출중했었다.
이 대통령은 이미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KBS방송을 통해 광업․은행․철도․토지개혁과 같은 혁신적인 비전을 담은 ‘경제정책 33개항’을 열거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미국원조, 귀속재산 처리, 토지개혁과 공업화 등 경제에 우선을 둔 조선부강정책에 대한 담화도 발표했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고 대한민국의 부강을 위해 직접 경제문제를 챙겼다. 1948년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미국정부와의 재산에 대한 협정이 있었다. 이 협정에서 이 대통령은 달러를 직접 관리하며 환율문제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등 경제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균형있는 경제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던 그는 1949년 경제부흥 5개년 계획과 물동계획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이후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근간이 되는 등 커다란 영향을 줬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렇게 경제문제를 직접 챙기게 된 것은 본인 스스로 경제전문가라는 인식이 있어서 였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국제법을 전공했는데 그중에서도 국제무역과 관련한 학문을 공부하고 국제경제 관련 논문을 발표했었다.

또한 해외 독립운동 시절 학교를 운영하고 임시정부의 자금을 맡아 풍부한 실물경제 경험도 했다.

이렇듯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경제 대통령은 없었다. 앞서 밝혔듯이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승만 때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승만 없는 박정희 경제 대통령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